그것이 더군다나 여행하며 느낀 이야기나 겪은 일들이 담긴 산문집이라 나를 조용하고도 강력하게 흡입해준다. 해외여행은 4번 정도밖에 못 가본 내게 작가가 해주는 여러 이야기는 환상의 세계처럼 다가왔다.
120번을 넘게 여행했다는 작가는 곧잘 새로운 시점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내가 여행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이 사람은 다양하고도 깊게 느끼어 감상하고 나 또한 경험을 이 사람처럼 기쁘게 내놓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내게 웃음이 다가올 정도로 무조건적인 친절은 받아본 적 없지만 언젠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받을 수 있겠다. 내가 있는 이곳과는 다르게 무조건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느낄 수 있겠다는 희망마저 관측된다.
분명 작가에게는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모든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그것을 조심스레 숨기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미덕 아닌 미덕이다.
그래서 그러한가? 전혀 부담 없는 문장들 덕분에 보통은 독후감(讀後感)이 아닌 독중감(讀中感)을 쓰던 내가 다 책을 다 읽고 온전한 독후감을 쓰게 된 것이다. 분명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이 나를 종장에 이르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행 이외에도 작가는 끊임없이 한 가지 주제를 설파한다.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친밀감이 높았던 친구조차 등을 돌리게 한 ‘혼자’와 ‘고독’에 대한 독보적인 주관성 때문이다.
작가는 혼자 있음으로써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기대어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다며 고독해서 나이를 들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권력’을 갖게 된다고 그렇게 그렇게 선파한다. 이는 내게 다가오며 두 가지 물음을 주었다.
나는 혼자 있음으로 아직 느끼지 못한 것들인데 내가 부족한 것인가? 시간이 부족한 것인가?
나는 아직 사람을 겪고, 사람으로 깎아내려 보지 못해서 잘 모르는 것인가?
그도 그럴 것이 여느 산문집에서, 시집에서 빼놓을 듯 없이 이 산문집에서도 그렇게 사랑으로 조각품을 만들어 내서이다.
진심을 담아 보여주든, 내게만 필요해서 잔잔히 울려 퍼지게 구성하든, 내게 보여주었기에 나는 조각품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일반적인 사랑을 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일방적인 사랑만을 고집했기에 남아있는 나의 애착이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나 싶은 때, 그렇게 어렵게 생각 말라고 나를 붙잡았다. 그냥 이대로 다시 읽어보라는 책의 글귀에 그렇게 다시 책에 빠져들어 천천히 소화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책 제목처럼 “혼자가 혼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받아, 나는 글을 읽게 된 것이다.
작가는 겪은 경험과 이야기들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품과 동시에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듯, 가진 상냥함을 실제 이야기처럼 꾸며낸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과 실화들이 유화물감이 물에 천천히 개어지듯 아름답게 뒤섞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