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b0qdqVJ-Qs?si=cvEQh7r7VzJQBwpA
글 정리 공부
일제강점기 1930년대 저항
국외 1930년대
국외부터보면 봉오동전투 – 훈춘사건 – 청산리대첩 – 간도참변 – 대한독립군단 – 자유시 참변 – 3부 성립 – 3부 통합 – 미쓰야 협정까지 가며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군과 중국군 동시에 도망다니는 신세였다. 하지만 만주사변(1931)이 일어나며 중국과 일본의 일시 동맹이 다시 깨지고 한·중 연합작전이 시작된다.
당시 만주는 3부 통합의 결과로 북부에 혁신의회와 남부에 국민부가 있던 상황. 혁신의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만주지역에 한국독립당(휘하 한국독립군)이 세워진다. 지청천이 이끌며, 한중연합작전으로 승리한 전투가 2개나 있었다. (쌍성보 전투와 대전자령 전투) 이 지역이 일본군 손으로 들어가며 이후 이동하게 된다. 남아서 여전히 만주지역에서 싸운 동북항일연군이 있었다. 이때 김일성이 이끌어 보천보전투를 승리했다고 한다.
남만주에서는 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이 양세봉을 중심으로 영릉가·흥경성 전투를 이끌었다.
정리해보면 부대는 6개만 기억해두면 된다.
1920년대 | 대한독립군(봉오동전투) |
북로군정서(청산리전투) | |
1930년대 | 한국독립군(쌍성보·대전자령전투) |
조선혁명군(영릉가·흥경성전투) | |
1940년대 | 한국광복군(선전포고문과 OSS) |
조선의용군(조선독립동맹) |
이후 중국관내 지역에서는.. 김구(임시정부)와 김원봉(의열단)이 활약중이었다.
김구는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국민대표회의 이후 축소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인애국단을 세워서 이봉창(일본), 윤봉길(중국)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32)는 중국의 지원계기가 된 큰 의거였다.
이후 당이 필요함을 느껴 한국국민당을 세우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대대적 압박으로 임시정부를 충칭으로 이동한 이후 한국독립당을 세운다. (40, 충칭). 또한 한국광복군도 충칭에서 합류(지청천, 김원봉, 장준하)하고 “일본이 망해가니 망하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한다.
의열단 김원봉은 오직 무력투쟁으로는 힘듦을 깨닫고, 황푸 군관 학교에 입교했었다.
이걸보니 우리도 조선인 군간부가 필요하겠다 하여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운다
이후 민족혁명당을 세우고 넓은 영향력을 미치다가, 조선민족전선연맹(37)을 맺어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단체가 세워진다. 산하부대로 조선의용대를 두고 활동하는데 이 조선의용대는 이후 한국독립당으로 합쳐지거나 사회주의쪽으로 가서 호가장 전투 이후 옌안으로 옮겨 조선의용군을 만든다.
이 조선의용대의 의미는 중국관내에서 최초로 세워진 군대이다.(한국광복군보다 빠름)
이는 중국 내에서 타 나라의 군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와중에 손기정이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살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내 1930년대
국내에서는 가열차게 민족말살정책/통치가 진행중이었다.
한글
1. 한글을 지키기 위해 문명퇴치운동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이것을 브나로드 운동이라고 한다. (민중속으로 들어가서 민중들에게 교육/소통을 하자)
2. 조선어 연구회는 조선어 학회(최현배, 이극로)로 이름을 바꾸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제정등을 이끌어 나갔다. 잡지 <한글>을 발행하고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시도하여 차후 현대에 전달된다.
3. 시인은 저항시인으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다. 친일 시인으로는 서정주와 노천영.
역사
1. 민족주의사학이 발달하며 정인보의 ‘얼’이 중심으로 조선학운동을 펼쳤다.
2. 실증주의사학으로는 이병도의 ‘진단학회(학보)’
3. 사회경제사학으로는 백남은의 ‘유물사관(역사는 진보한다_결국 어떻게 하던 성장하여 사회주의로 성장한다. 이는 조선인이 멍청하여 정체되어 있다는 정체성론과 다르게 역사는 진보한다는 의미로 정체성론을 부정하여 일제의 식민사관을 타파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1. 위에서 말한 유물사관은 사회주의적 이론이다.
2. 이제는 쟁의가 불법화되지만 막지못한다.
3. 이때 “강주룡”이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하여 이러한 지하에서의 혁명적 조합 활동을 이어간다.
40년대에는 일본의 패망이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의용대 일부는 한국광복군으로, 일부는 옌안으로 가서 조선의용군에 합류한다.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독립동맹과 임시정부가 나뉘어져 2개로 활동을 이어가며
국내에서는 조선건국동맹(여운형)이 45년 독립되자마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 바꾸며 나라를 준비한다
결국 일본이 망하면서 공화정으로 하자고 결의하여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한 것이 아니기에 자주권이 많이 부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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