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S_OxRkOBTE?si=g4wd6E4bhwZq_FhB
글 정리 공부
1920년대의 저항
10년대와 완전히 달라짐.
3·1운동의 영향으로 문화통치 변환시작된다. 1920년대.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실력양성운동으로 시작한다. 이는 애국계몽운동계열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1. 물산장려 운동 – 국산품을 써서 우리나라의 자본력을 올리자! 라는 의미로 시작되어 특히 회사령이 폐지되고 들어오는 일본회사들에 대항하며 운동이 전개된다. 평양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물품이 동나며 가격이 올라가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비판을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더 크게 운동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2. 민립대학설립운동 – 문화통치로 읿제가 교육차별을 완화시키는데 2차 교육령때 우리 대학을 만들자고 주장하여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실시한다. 일제는 이것을 방해하며 경성제국대학을 만든다.
3. 문맹퇴치운동 – 조선일보가 주도하여 문자보급운동을 실시한다.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사유재산을 부정하며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가 아닌, 노동자와 농민 중심으로 쟁의를 전개한다.
이 당시 20년대는 사회주의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이며,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인 동맹으로 다같이 전재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이다.
1. 소작쟁의 : 암태도 소작 쟁의(23)_ 암태도 소작쟁의는 지주가 소작료를 올리며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싸워 이긴 쟁의이다. 이는 24년 서규모 암태도 소작쟁의의 아사동맹으로 이어졌다.
2. 노동쟁의 : 조선노동총동맹(27), 아사동맹(23)_위의 아사동맹과 달리 고무공장에서의 쟁의. 또한 가장 의미있는 원산총파업(29)이 일어났다. 원산총파업은 원산에서 일어난 일본인 감독에 대항해 일어났으며, 심지어 외국과 일본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엄청나게 나오자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만들어서 사회주의를 타겟으로 법을 재정하고 겸사겸사 독립운동가들까지 탄압한다.
여기에 민족주의 진영에서도 큰 활동을 하지 못하자 기회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이 기회주의자들은 “지금은 일본에 순응하고 일본에게 인정받아 투표권을 받고 자치권을 달라고 하자(자치론)”고 하는데 이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분노하여 분열이 일어난다.
민족주의세력들은 자치론자들을 반격할 세력이 필요하고, 사회주의세력은 치안유지법으로 인해 활동할 무대가 생겼으니 이러한 배경속에서 좌우합작이 진행된다. 여기에 6·10 만세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더 진행된다.
일단 조선민흥회(민족주의), 이후 정우회(사회주의)를 따로 만들고 정우회 선언을 실시한다.
이후 좌우합작이 있을것이라는 정우회 선언을 배경으로 “신간회”가 만들어진다.
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최대 항일운동세력으로 27년에 세워진다.
이상재가 회장, 홍명희(임꺽정 저자)가 부회장으로 취임하고, 민족유일당으로 출범한다.
특히 공개단체이며 전국에 지회가 있는 규모가 매우 큰 세력이었다.
또한 자매단체로 (근우회_여성단체)가 있었다.
신간회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후원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후원뿐만아니라 진상조사단을 파견, 민중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31년에 해소된다.
해소란 더 발전적인 회로 해체한다는 의미인데, 뒤의 단체가 발전하지 못하여 사실상 해체라고 봐도 된다.
1920년대 대중운동
1920년대 대중운동은 다양한 사회구성층들이 느껴왔던 차별을 철폐하자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학생운동
- 6·10 만세운동. (26)
6·10 만세운동은 사회주의자들이 계획하여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이 주도로 시행된 만세운동이다. 이 6·10 만세운동이 시작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 간다.
6·10 만세운동 → 조선민흥회 → 정우회선언 → 신간회 → 광주학생항일운동
- 광주학생항일운동. (29)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일본학생들이 조선학생들을 희롱하며 싸움이 벌어진 사건이다. 그런데 일제가 한국학생들에게만 처벌을 진행하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다. 동맹휴학을 시행하고 이를 신간회가 도우며 운동이 전개된다.
청년운동
- 조선 청년 총동맹(24)
소년운동
- 천도교(동학)가 중심으로, 방정환이 잡지 <어린이>를 펴내고 ‘어린이’라는 단어를 만든다.
여성운동
- 근우회 (좌우합작)
형평운동
- 백정이 들고 일어난다. (진주중심) 이는 차후 임술농민봉기와 연결된다.
1920년대 의열투쟁
가장 대표적인 의열단 (19). 의열단은 신채호 <조선혁명선언>에서 나온 “폭력으로 내쫒자” 이념을 따른다.
김원봉 대장이 중심으로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다양한 의열 활동이 펼쳐졌다.
부산 → 밀양(최승봉) → 남산(조선총독부_김익상) → 종로(경찰서_김상옥)
→ 일본(황궁_김지섭) → 식산은행(나석주)
하지만 의열투쟁만으로는 일본에서 독립이 힘들겠다는 판단하에 조직적으로 저항을 예고하며 중국의 황푸 군관학교에 들어간다.
민족문화수호운동
국내에서는 조선어연구회가 한글날과 <한글> 잡지를 펴내고, 카프문학이 발달한다.
역사로는 신채호의 <조선사연구회> <조선상가사>, 박은식의 <국혼_나라가 망했어도 역사를 잊지 않으면 나라는 돌아온다>, <한국종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영화로는 나운규의 <아리랑>, 원불교에서는 새생활운동, 천도교에서는 <개벽> <신여성>등의 잡지가. 불교에서는 ‘조선불교유신회’가 한용운에 의해 전개된다.
1920년대 국외 독립운동
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 봉오동전투 : 일본군이 만주에 있던 독립군과 사소한 싸움이 커져 발생한다. 이 기습을 당한 일본군은 중국땅에 본인들의 군대를 들어오게 하기 위해 훈춘사건을 일으킨다.
훈춘사건 : 일본 군인들이 만주에 들어오기 위해 훈춘족에게 돈을 주어 본인들을 공격하게 함. 이 명분으로 본인들을 지킨다며 군대가 들어온다.
청산리대첩 :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 의민단까지 합류하여 대규모 전투가 이뤄진다. 게릴라전으로 승리를 거둔다.
간도참변 : 패배에 열받은 일본군은 간도 참변을 일으킨다.
대한독립군단 조직 : 러시아쪽으로 넘어가서 도움을 준다고 들었지만 이때 러시아가 무장해제를 하라고 하였고, 이것에 반항하여 전투가 이뤄진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 3부(참·정·신)을 성립한다. 정부가 행정과 군사를 통제하고 다시 민주로 오니 일본이 중국 만주군벌과 미쓰야 협정을 맺어 우리가 도망다니게 되었다.
이후 3부 통합 운동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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