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rHig3-Bf24?si=BopCqh347nGzdnEI
글 정리 공부
개항기 경제
강화도 조약이나 조-일 무역 규칙(무관세, 무항세, 무제한 곡물 유출 가능)이 이어지고, 조-일 수호조규조약(개항장에서만 무역, 일본화폐 사용)등이 체결되며 일본은 개항기 경제에 막대한 영행을 미치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일단 강화도 조약. 특히 강화도 조약_76년도 라인과 임오군란_82년도 라인은 완전히 다른 범위를 가진다.
이는 관세와 최혜국 대우가 주로 차이가 난다.
강화도 조약까지는 관세도 X, 대신 최혜국 대우도 X, 대신 개항장내에서만 무역을 해야했고, 무제한 곡물 유출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임오군란이 발생하고 임오군란이 일어난 해에
첫 번째 82라인 조약. 조-미 수호통상조약도 같이 맺는다. 조-미 수호통상조약에는 거중조정_다른 나라와 마찰이 있을 때 중계해주겠다, 관세가 들어가고, 최혜국대우까지 들어갔다. 또한 보빙사에 민영익과 유길준(서유견문)이 참가하여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조-미 수호통상조약에 관세와 최혜국 대우가 들어가며 이후 조약들은 모두 2개가 들어간다.
두 번째 82라인 조약.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이 맺어진다. 이건 무역장정이라 그런지 개항장 내 무역 제한이 풀려 내지 무역이 허가된다. 보부상등의 중계 무역 상인들의 타격이 컸다. 이에 시전상인들과 청, 일 상인들의 상권경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세 번째 82라인(사실 이건 83) 조약. 조일 통상장정이 맺어지는 이유 : 이걸 본 일본이 가만히 안 있는다.
관세를 추가하는 대신 최혜국 대우가 추가되고 사실 의미 없는 방곡령(지방관이 1달전에 말하면 지방의 곡물 가져가는 것에 제한둘 수 있음)이 추가된다.
이제 아관파천까지 쭉 가보자. 아관파천이 발생하며 러시아는 당연히 영수증을 내민다.
이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던 것이었고, 최혜국 대우로 인해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에도 뭔가 하나씩 줘야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 : 삼림채벌권, 절영도(부산)조차, 한-러 은행 설립 요구.
미국 : 금광(원산), 경인선 요구 (차후 일본)
프랑스 : 광산채굴, 경의선 요구 (차후 일본)
그래서 아관파천은 곧 침탈의 절정이라고 보면 된다. 이때는 이권 중심으로 많이 빼앗겼다.
하지만 러-일 전쟁을 기점으로 이제는 땅과 시스템까지 빼앗아가기 시작한다.
일본은 황무지 개간을 요구한다. 이때 보안회가 반대하여 다행히 무산되고, 1차 한-일 협약때 경제 고문 메가타와 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들어오며 본격적인 수탈준비를 시작한다. 이때 을사늑약과 동시에 화폐정리사업을 메가타가 펼친다.
일단 백동화를 걷고, 제일은행권으로 바꿔서 은행자본과 상업자본에 타격을 입는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일본에 종속되는 것이다. 또한 기존 백동화를 찍어내던 전환국이 폐지되고 기존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나라가 소유한 금만큼만 돈을 찍을 수 있음)으로 바뀐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일본 돈을 빌려와서 개발을 진행하다보니 일본에게 빚이 쌓이기 시작함 (차관)
그래서 점점 많아지다보니 1908년이 되면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세워지며 토지조사사업까지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술국치 전에 이미 일본은 우리나라의 경제와 토지를 먹어치워 준비를 다 해놨다.
이제 그럼 이 과정속에서 어떻게 저항해왔는지.
1. 상회사 결성.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조일 통상장정을 통해 청나라 상인들과 일본 상인들이 내지무역을 하며 경쟁을 하게 되자, 우리나라 상인들이 모여 ‘상회사’를 만듬. 일종의 주식회사로 저항을 지속함.
2. 방곡령 사건. 아까 조일통상장정으로 관세가 붙은 대신 최혜국 대우와 내지무역이 활성화되고 방곡령이 활성화 되었다고 했는데, 함경과 황해도에서 지방관이 방곡령(~89)을 선포했다. 하지만 일본이 1달내에 신고를 안했다며 무시하고 오히려 벌금을 내게 하는 일이 있었다.
3. 은행 설립. 이제 세금을 돈으로 내야하니 은행이 필요로 했다. 이때 3개의 은행. 조선 은행 (96), 한성 은행(97), 천일 은행(99)가 설립되었다.
4. 이권 수호 운동. 이권 수호 운동과 상권 수호 운동은 아관파천 시기이다. 특히 이권 수호운동의 경우, 최혜국 때문에 들어온 러, 미, 프의 요구 사항들을 많이 취소시켰다. 독립회의 만민공동회와 전영도조차를 막아내고, 한-러 은행 설립도 막아내었다.
상권 수호 운동은 시전상인들의 경쟁을 위해 진행된 운동이며, 황국 중앙총상회가 결성되고, 일시적으로 다같이 문을 닫는 철시등을 시행하였다.
5. 땅에 관심을 가지는 일제에 대항하여 보안회와 농광회사가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에 반대하여 일어났다.
6. 나라 빚이 많아지는 시기가 왔다. 아까의 그 차관. 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제에 빚이 더 생기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게 국채보상운동이다. 이때 나라빚이 약 1300만원 정도였는데, 김광제, 서상돈이 중심으로 대구에서 시작하였다.
이때의 국채보상운동은 물산장려운동과 다르게 대구에서 시작하였으며, 나라 빚 갚기 운동이다.
이렇게 국채보상운동을 널리 알린게 대한매일신보이다. (양기탁과 베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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