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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정리 - 고려 초, 중기 정치와 무신정변 (심화별개념7. 10, 11강)
https://youtu.be/UbPH3LW4x7A?si=d9O3sO_jTpatXNABhttps://youtu.be/gbHHhsTNisE?si=RI0MSIaI7yez0QYf 글 정리 공부 고려의 시작고려의 시작이다.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대략 500년, 1170년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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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리 공부
고려는 외부 침략이 심각했던 시절이다.
10~11C는 거란(요), 12C는 여진, 13C는 몽골, 14C는 홍건적과 왜구로 심각했다.
이제 이 거란 여진 몽골 홍건적과 왜 순서대로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작성해보자.
거란 10~11c
이 당시 국제시대가 시작되면서 거란이 송을 쳤을 때 고려가 송을 도울지도 모른다는 명목에 거란은 고려를 먼저 친다. 이때 고려도 광군이라는 군사조직을 개편해놔서 준비해놨었다. 그래도 전쟁을 고민하던 때, 서희가 등장(여기서 싸워보지도 않고 내주면 후대에 어떻게 기록되겠냐)해서 거란과 이야기를 하고 온다.
거란 왈 “너네는 꼬라지보니까 여러면에서 신라의 후대인데 고구려의 후대인 우리가 땅을 먹는게 맞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이름이 고려인 이유가 뭔데,, 고구려에서 하나 뺀거 잖아,, 그리고 우리는 사실 너네랑 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너네한테 가는 길에 여진족이 사는 강동 6주가 있어서 가질 못하겠더라 그거만 주면 우리가 금방 친하게 지나자는 편지 보낼게” “?? 그래” 라는 흐름으로 강동 6주를 얻어내었다.
하지만 2차로 거란이 공격을 당시 고려는 쿠데타 속에 있었고 이 현종 원년에 강조의 변을 구실로 쳐들어온다. 이때 현종이 나주까지 내려갈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양규”라는 장군이 1차로 막아내어 상황이 괜찮았다.
3차. 이때는 강감찬이 귀주(강동 6주 중 하나)대첩으로 막아내어 송-거란-고려 체계에서 대등한 위치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초조대장경을 만들고 천리장성, 개성주변 “나성”을 지어내며 방어를 준비했다.
여진 12c
이러는 사이 여진이 성장해버렸다. (문벌귀족시절), 여진족이 슬슬 압박을 시작한다.
(숙종) 이때 윤관이라는 인물이 “우리도 여진족처럼 말을 쓰는 특별 부대 하나 만들자”라고 하여 여기서 시작된게 별무반(특별한 무과 부대)이다. 별무반은 신기군(기마중심)과 신보군(보병중심), 항마군(스님중심)부대로 나눠져 있었다. 이렇게 구성한 별무반으로 여진을 치고 동북 9성을 확보하기도 했다. (예종)
하지만 여진이 점점 커지며 동북 9성을 돌려주고 금나라로써 사대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집권세력이 바로 이자겸_김부식이다. 아직 무신정변 전. 기득권이라는 의미이기에 이들 입장에서는 사대를 안할 이유가 없었고 이러한 이유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무신정변까지 일어나며 13C가 되고.. 몽골이 온다..
몽골 13c
이제 몽골인데,, 몽골 사신이 고려에 왔다가 몽골로 돌아가는 길에 죽어버려서 몽골이 쳐들어온다.
당시 1225년으로 최씨 무신 정변 시즌이다. 최우는 이때 강화도까지 천도한다.
이때 몇몇의 장군들은 기억에 남기면 좋다. 박서라는 인물은 귀주성에서 몽골군과 싸우지만 몽골군과 싸움이 끝날때까지 귀주성에서 버틴 인물이다. 김윤후는 처인성 전투에서 이기기까지 하고 이후 무관으로 인정받아 충주전투때는 노비문서를 다 불태우며 이기면 노비에서 탈출시켜준다고하여 사기를 끌어올리고 승리한 대단한 장군, 여기에 다인철 소에 있는 사람들도 승리하여 민간 승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절대 항복들 종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배중손과 김통정이다. 이들은 삼별초의 대장으로 좌+우별초와 신의군을 합쳐 삼별초를 강화도-진도-제주도까지 옮겨가며 계속 싸운 사람들이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몽골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항복하고 원 간섭기가 시작되어버렸다. 원 간섭기에 친원파로서 권력을 잡은 것이 권문세족이다. 이 원간섭기 많은 것들이 원에서 빼앗겼는데
ⓐ 영토 축소 (쌍성총관부_철령 이북, 동녕부_서경, 탐라총관부_제주)
ⓑ 부마국으로써 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해야함. ⓒ 충O왕이 들어가야 함.
ⓓ 관제개편 ( 2성-첨의부, 6부-4사, 중추원-일직사로 2성 6부 중추원에서 첨의부 4사 일직사로
ⓔ 내정간섭 (다루가치, 정동행성 설치(개경_일본 정복의지) ⓕ 공녀 (조혼 풍습 퍼짐)
ⓖ 몽골풍 (변발, 호복) 및 고려풍의 유행등
이때 성장하는 권문세족은 정치에서 도평의사사를 중심으로 한 움직임이 보이며 음서과 정방등을. 경제적으로는 대농장을 가져서 원에 붙어 빨아먹었다. 하지만 원은 영원하지 않으니..
공민왕은 원에서 빠져나가려고 시도한다. 특히 공민왕(노국대장 공주와 결혼)은 기존 많은 정책들을 취소하거나 원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일단 쌍성총관부를 가져오고, 동시에 권문세족의 기철(기황후의 오빠)를 죽였다. 또한 신진사대부를 등용하면서 내정간섭을 최소화시키고, 몽골풍을 금지시키며 정방을 폐지했다. ‘신돈’의 주도로 권민병정도감(불법적으로 얻는 땅을 바르게 돌려놓는 기구)를 설치하게 하였다.
이렇게 공민왕(신돈)이 진행중일 때 홍건적이 쳐들어오고 공민왕은 안동까지 피신을 오고 만다. 왜구들도 쳐들어오는데, 왜구들을 물리친 것이 최영장군의 “홍산 대첩”이다. 이후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한 “진포 대첩”으로 쓸어버리고 이때 남은 왜구들이 향한 황산에서 이성계가 “황산 전투”로 쓸어버린다.
이 3명, 최영 장군, 최무선, 이성계는 스윗영포티, 즉 신흥무인세력과 신진사대부가 등장한다.
이후 원 대신 명이 철령위를 요구하여 이에 반발한 최영와 우왕은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을 지시한다.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말하지만 결국 출발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이때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세력이 편을 먹어 최영과 우왕을 죽이며 권력을 장악한다.
이때 과전법을 시행하는데, 과에 따른 땅 나눠주기를 시행하며 이때가 1392년이다.
고려의 경제
수조권 : 일단 초기 태조에는 당연히 호족이니 역할에 따른, 논공행상의 성격인 역분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광종을 거쳐 경종, 시정전시과(처음 시행하는 전시과)가 시작되어 전직과 현직 모두 땅이 지급되어왔다. 이때 ‘인품’을 고려한다고 말하긴 했다만 사실 이것은 권력/가문 구도가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후 목종(강조의 변때 폐위된 왕), 개정전시과가 시작되어 ‘인품’을 삭제한다.
이후 문종, 경정전시과로 변형되어 땅이 부족해지니 현직에게만 주어지게 변하였다.
수취제도 : 이제 기존 민정문서가 변형되어 토지와 역으로 나눠진다. 토지를 적은 문서가 양안(토지세), 호적을 적은 문서 역으로 나뉘어 관리를 시작한다.
농법 : 논은 남부 일부에서 이앙법(모판에서 키우고 줄맞춰 다시심기)가 유행하지만 전국적으로는 아직 직파법을 따른다. 여기에 농상집요(농작물을 키우는 법이 담긴 책)이 원나라에서 이암을 통해 들어온다.
밭은 윤작법(2년 3작), 목화(from 원, 문익점)를 따라온다.
상업 : 무역은 벽란도에서 대부분 이뤄졌는데, 그 이유는 벽란도가 수도 개경에서 가까운 이유로 국제무역항이 되었다. 또한 예성강 근처로 항구가 워낙 커 이것을 표현하는 이규보의 시가 하나 있을정도로 컸다.
이때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를 Corea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화폐로는 활구(은으로 된 병), 건원중보(성종, 철전). 해동통보(숙종), 주전도감등을 시도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해동통보를 믿지않고 실물 거래를 중시하여 화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다.
여기에 관영상점으로는 서적점, 다점, 시전(시장)과 시전을 감시하는 경시서등, 상평창(물가를 조절하는 기구)등이 설치되었다.
수공업 : 수공업은 관영수공업으로 소를 중심으로 한 수공업, 특히 민영수공업과 사원수공업이 중심이었다. 이 소는 망이 망소이의 난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것과 몽골과 싸울때의 다인철 소를 기억해두자.
고려의 사회
고려의 사회는 호족 – 문벌 – 무신 – 권문세족을 이어가는데, 여기서 문벌과 중간계층이 지배층이었다. 이 중간계층은 진짜 중간계층이 아니라 하급관리와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잡류, 남반, 군반, 향리등)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나머지 절대 다수는 양민과 천민이었다. 양민은 백정(고려 시대 백정은 그냥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과 향, 부곡, 소민들을 말하는데 향부곡소민들은 기술이 있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천민과 양민의 사이로 일만하게 만든 특수구역이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세금도 더 내고 거주이주의 자유도 없다. 또한 천민은 노비가 다수로, 매매 및 상속, 증여가 가능한 물건으로 소비되었다. 이것에 일천즉천(부모님 중 한명이라도 노비면 노비)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구분이 심했다.
농민조직 : 농민조직은 고려 전기 불교 신앙 조직인 매향(향나무를 바다에 심어 종교적인 의미를)이 중심이었는데 후기로 넘어가면서 마을공동조적인 상장제례가 농민조직으로 사용되었다.
사회제도
구휼 : 흑창(태조)-의창(성종), 보(빈민 구휼을 위한 기금)
기구 : 동-서 대비원, 혜미국은 병원으로써, 국제도감과 구급도감은 119로써 양민을 도왔고
법률 : 그 마을에서 쓰는 관습법이 당률보다 많이 쓰였음
가족제도 : 가정 내의 여성 지위가 상승하고 거의 둘의 지위가 동등하게 취급됨. 이에 따라 균분상속(똑같이 상속), 윤령봉사(둘다 제사하기), 외가 음서 허가, 호적에서 나이 순 기재등.
표 정리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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