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bPH3LW4x7A?si=d9O3sO_jTpatXNAB
https://youtu.be/gbHHhsTNisE?si=RI0MSIaI7yez0QYf
글 정리 공부
고려의 시작
고려의 시작이다. 고려는 918년부터 1392년까지 대략 500년, 1170년 무신정변을 기준으로 반으로 나눠서 생각하면 편하다. 다시 여기서 무신정변 앞을 나눠서 우리는 초기 / 중기 / 후기로 나눈다.
고려 초기 세운 사람들은 지방 호족들이다. 당장에 고려를 세운 왕건만 봐도 애초에 지방 호족 1중 하나 였다. 때문에 이들과 6두품들이 기득권화되어서 차후에 중기부터는 문벌귀족이 된다. 이 문벌 귀족들이 이끄는 시절이 중기이며, 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가 무신들이 정변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고 몽골이 쳐들어오게 되는 것. 차후 권문세족이 이끄는 시기가 바로 후기이다.
순서대로 따지고 보면 호족-문벌-무신-권문세족-신진사대부인 것이다.
태조왕건은 공고신일, 공산전투, 고창전투, 신라 항복, 일리천 전투의 과정으로 권력을 얻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일단 나라를 새로 지으면 백성들이 힘든 상태이기에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나라가 살아난다.
그래서 1. 민생안전을 위한 감세 1/10, 2. 흑창(진대법을 이은 춘대추납)을 설치하였다. 또한 본격적인 호족정책을 진행한다. 본인도 호족출신이고, 왕권을 호족들과 함께 했기에 완전한 왕권 강화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줬는데, 이는 왕건의 부인이 29명인 점, 사성(성을 부여하다), 역보전(공로별 토지(수조권) 지급)등으로 호족들과 사이를 좋게하는 행동들을 진행하였다.
제한한 것으로는 사심관제도가 있다. 각 지역의 사심관을 정해 지역의 연대책임을 지게한 사심관 제도는 각 지역을 관리하게끔 하는 강제성을 부여하였다. 이 대표적인 예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김부)가 있다. 또한 기인제도(유력세력의 자식을 개성으로)를 적극 사용하였다.
이렇게 호족과 관계를 위해 많은 자식들이 차후 고려의 왕위 싸움을 유발한다. 특히 왕규(1,2대왕의 장인이라는 점에서 김흠돌의 난과 비슷하다)의 난등.
일단 광종이 등장하여 왕권을 다시 강화한다. 일단 노비안검법을 발행한다. 이 노비안검법은 노비들이 군사력이 될 수 있으니, 불법적으로 모은,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민으로 다시 돌려놓는 법으로 각 호족이 가진 예비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또한 과거제를 시작했다! 과거제는 쌍기(중국인)의 건의로 시작된 것인데, 이때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당연히 (노린것일지도 모른다) 호족들을 대거숙청하며 추가적으로 공복까지 제정하여 왕권을 강화시킨다. 이때 본인 전성기임을 알았는지 칭제 건원 (광덕, 준풍)도 실시하며 왕권을 안정화하였다.
이런 덕분에 이어지는 경종때 역분전(공에 따른 분배)가 아니라 전시과(급에 따른 분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때 전시과는 처음 정해지는 전시과라 ‘시정’ 전시과로 불린다. 기존에 전시과가 없었고, 녹읍, 관료전에서 전시과로 바뀐 역사적 순간이다.
이제 안정화가 되어 성종 시절 본격적인 세부 관리에 들어간다. 유학자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전달한다. 기존 ‘최치원’은 시무 10조를 제출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이 시무 28조의 골자는 “외관을 파견하소서”인데, 의미는 “각 지역으로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권력을 잡아라” 라는 의미와 같다. 이외에도 “지방은 12족에 지방관을, 중앙에는 2성 6부제로 행정조직을 개편하고, 연등회(불교)와 팔관회(도교)행사들을 줄여라” 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반종교 유학자의 말을 한다.
그래서 이것들이 진행된다.
중서문하성은 원래 중서성과 문하성의 2개였는데 (그래서 당나라의 3성 6부) 2개를 합쳤더니 이렇게 중서문하성이 되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상서성 아래에는 6부 (오늘의 행정부처)들이 있었다.
또한 송나라의 영향울 받은 중추원에는 추밀과 승선으로 각 품에 따른 배치가 있었다. 이 중 승선은 비서로써 승이 들어가면 대부분 비서와 관련된 부서임을 알면 좋다. 아무튼 재신과 추밀에 있는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 재추 회의를 진행한다. 여기서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을 여는데 이 재추회의가 고려에만 있었음을 알면 좋다.
도병마사는 “병마사(국경지역을 지키는 사람)을 관리하다.” 라는 의미로 시작한 임기기구였는데 이후에는 실제로는 거의 모든 국가 정책 등을 결정하는 기구로써 상설기구가 되었음. 고려 후기에는 도평의사사로 바뀌게 됨.
식목도감은 나라의 식이 있을 때 어떤 차례로 진행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2개가 재추회의이다. 재추회의는 아닌 회의로 무관들의 회의 “중방”이 있었다.
또한 고려시대의 언론기관인 대간(대성)이 있었고, 여깃서는 서경, 간쟁, 봉박등으로 왕권을 견제 가능했다.
지방 12목
지방의 12목은 다시 5도 양계로 나눠진다. 5도는 행정, 양계는 군사로 특성화되는데, 여기의 양계(북계, 동계로 북계는 위쪽과, 동계는 동쪽의 국경과 맡닿아있다)에 파견하는 지방관이 “병마사(병과 말을 관리하다)”이고 나머지 5도에 파견한 지방관이 “안찰사”이다. 아직까지는 왕권이 약해서 아직 안찰사도 별로 권력이 강하지는 않다.
이제 더 남은 구역으로 가는게 “수령”이다. 특히 (5도 아래 3도호부 아래 8목으로 파견된다) 주군현까지는 수령이 갈 수 있는데, 더 작은 속군, 속현에는 못간다. 이런 속군과 속현은 “향리”가 다스리게 했다.
중앙에는 2군 6위가 파견하여 군적이 있고 직업군인이지만, 주현군과 주진군(국경의 군인과 극 후방의 군인)은 군적이 없는 상비군의 형태를 가졌다.
고려 중기
성종을 거치며 안정되기 시작한다. 호족들이 시간이 지나며 문벌로 고정되고 성장이 시작된다. 그럼으로 기존 본인들이 왕권을 잡는데 필요했던 선종은 필요가 없어져 이제는 교종으로 다시 종교를 변형하였다.
또한 초기에는 고구려를 계승하는 정복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중기부터는 보수적인 신라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거기에 이제는 문벌귀족들만의 특권을 만들기 시작한다. 정치에서는 음(조상들의 음덕)서로 과거시험도 안보고 본인의 자식들을 관직에 앉히는가 하면, 경제에서는 공음전(고위공무원들이 받는 돈)등을 만들어내고, 사회는 본인들만의 사회를 이루어 폐쇄적인 통혼을 진행한다. 근친혼까지..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던 문벌귀족들은 권력을 잡는 것에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자겸(왕의 친할아버지이자 장인)_척준경의 난이 발생하는데, 척준경이 뒷통수를 쳐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뿐만아니라 서경파가 등장한다. 이 서경파는 기존 개경파와는 다르게 서경으로 천도하고 해당 시대에 위협이 되던 금나라를 상대로 싸움을 하자고 주장한다. 이를 승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다. 이때 다시 왕권을 바꾸기 위해 불교와 풍수지리설을 이용하며 서경은 고구려를 계승하기에 이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경파의 대가리, 김부식(삼국사기 저술가)이 이를 막아낸다. 특히 이들은 유학파이기에 금나라를 사대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신채호”의 조선사연구호를 보면 이 사건,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것이 어쩌면 문약한 유학의 길을 걸었기에 활짝 열렸던 일본에 패배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조선 역사 일천년에 제일 대사건”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문벌귀족은 이렇게 서경파를 처단하고 힘이 커질만큼 커진다. 그러다,,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이 무관인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버리고, 왕과 함께하는 수박회에서 ‘이소응’이라는 무관의 뺨을 문관인 ‘한뢰’가 때려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개빡친 무신들이 들고 일어나 무신정변 (1170년 의종)이 발생한다.
무신정변
이렇게 이의방과 정중부가 들고 일어나 무신정변으로 문벌시대가 역전된다. 이제부터는 고려후기라는 의미이다. 이제부터는 제추회의와 도병마사가 아니라 무관들의 회의인 중방이 회의기구역할을 시작한다.
이 군인들도 사실 큰 계획은 없었기에 권력싸움이 주로 되었고, 이것은 최충헌이 봉사 10조를 제출하고 이것이 아들은 최우로 이어져 그나마 나은 길이 이어진다. (사실 이것도 기존 무신정변으로 세워놓은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을 지들이 앉혔다.) 최충헌은 정치를 되돌리기 위해 자신만의 정치도구 교정도감(임시)을 설치하고 최우는 정방(인사권 정리), 서방(문신들 우대)하는 2개를 설치하여 정상화를 시도한다.
결국은 이들도 무신이기에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할까 자기들만의 병력을 만드는데, 이 군사기구가 ‘도방’이다. 도방은 초기부터 존재했으며 없어졌다가 다시 최씨무신정권때 부활한다. 심지어 최우때는 도방이 야별초(밤의 치안을 담당)를 만들면서 나중에는 이것이 삼별초가 된다.
사회동요가 상당히 심하여 망이, 망소이의 난이 공주 명학소에서 발생한다.
또한 문신들 역시 저항하여 김보당(동계, 양계 중 하나)과 도위총(서경)이 개경파에 저항하며 등장하고, 김사미, 호심의 난과 만적의 난이 개경에서 발생한다. 이는 최충헌때로 “황후당상의 씨가 따로 있으랴”라는 구호를 내밀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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